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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조직 내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문화를 장려하기 위한 필수 직원 교육을 들었다.

 

그중 일부가 임신과 출산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는데, 직원이 임신 사실을 알렸을 때 매니저는 곧바로 휴직 계획에 대해 묻는다거나, 인력 공백에 대한 우려를 언급함으로써 임신한 직원이 부담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의 휴직 후 복귀한 직원에게 요청하지도 않은 '배려'를 한답시고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에서 상의 없이 배제시킨다거나, 어떤 걸 할 수 있고 할 수 없을지에 대해 대신 판단하지도 말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장거리 출장 기회가 있을 때 '너는 갓난아기가 있는 아빠니까(혹은 엄마니까) 출장은 어렵지?'라는 언급 자체가 안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해서 무엇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지를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기에, 옵션을 주고 충분히 논의를 하되 편견을 가지지 말라고 했다. 한마디로 '오지랖 금지'였다. 

 

회사의 기존 직원뿐 아니라 앞으로 들어올 직원에 대해서도 이러한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인터뷰를 모두 끝내고 채용 결정을 한 상태에서 인터뷰어가 조만간 출산을 할 계획임을 공개했다면, 이 사실을 근거로 채용에 불이익을 주거나 개인의 의사에 반하여 입사/휴직 시기를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내용을 듣고 누군가 질문을 했다. 이론 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팀 입장에서는 당장 인력이 필요해서 채용을 한 것이었는데, 입사하자마자 휴직을 할 사람을 고용하는 건 손해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인터뷰어는 회사에 자신의 휴직 계획에 대해 미리 고지해주는 것이 예의 아니냐는 뉘앙스였다. 

 

회사 측의 입장은 확고했다. 우리는 그 인력이 우리 회사에 들어올 만한 자질을 갖춘 인재인지 여부만 판단한다. 임신 또는 개인 건강 상의 이유로 단기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은 그 사람의 가치와 무관한 일이다. 그리고, 인터뷰어는 본인의 역량과 관계없는 사적인 내용을 인터뷰 과정에서 사전 공유할 의무가 없다. 우리 회사는 장기적으로 같이 성장하며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인력을 뽑는 것이지 지금 당장 들어와 업무를 나눠가질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다. 만약 단기간 성과가 중요한 상황이라면 당장 업무에 투입될 수 있는 조건의 계약직을 채용하는 것이 맞지,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 정직원을 채용하는 접근 방법은 옳지 않다고 못 박았다. 

 

실제로 이 원칙이 얼마나 예외 없이 지켜지는가는 따져볼 일이지만, 어쨌든 쉽게 물러서지 않는 원칙을 세우고 고수하는 문화란 꽤 괜찮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것이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라면 더더군다나 쉽지 않은 의사결정일 것이다. '당연히 안 되겠지'라고 지레 겁을 먹고 내 원칙을 너무나 쉽게 무너뜨리고, 아주 가벼운 요청에도 중요한 것들을 선뜻 내어주는 내 모습과 대조되어 보였다. 계약관계로 맺어진 직원에 대해서도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지키려고 노력하는데, 내 인생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나 자신은 그 동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나 삶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반성하게 되었다. 

 

 

#D-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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