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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고민 중에 당분간 월급을 줄이는 대신 단축근무를 하기로 했고, 오후 4시쯤 퇴근해 집에 도착했다. 

 

퇴근길에 쏟아붓던 비는 많이 잦아들어 주룩주룩 내린다기보다는 공기 중에 물방울이 가득 들어찬 안갯속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를 데리고 아파트 입구로 나갔다. 

 

'이건 비라는 거야'

 

손을 뻗어 그 통통한 팔꿈치 안쪽에 촉촉하게 내려앉는 빗방울을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 맞아 본 비가 신기했는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팔을 뻗었다가 손바닥에 떨어진 빗방울을 입으로 가져가 핥기를 반복했다. 

 

머리카락 사이로 통과하는 바람이 상쾌했다. 한 칸 한 칸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떨어진 나뭇잎도 줍고, 난간에 방울방울 맺혀 있는 빗방울도 손바닥으로 쓸었다. 미세먼지도 산성비도 걱정 않고 맨발로 뛰어나가 우리 아기랑 깔깔 웃으며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이 퇴근하면 이번 여름엔 물놀이를 하러 가자고 꼭 말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집으로 들어와 손발을 씻으려는데 아이가 물을 받아놓은 세면대 안에 주저앉았다. 요새 물놀이를 좋아해서 매번 얼굴만 씻기고 화장실에서 데리고 나올 때마다 통곡을 하곤 한다.

 

'우리 아기, 물놀이하고 싶어?'

 

옷도 입은 그대로, 기저귀도 찬 채로 욕조에 물을 받고 철퍼덕 주저앉아 본격적으로 물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장난감 물 조리개로 눈 앞에 물을 부어주니 가는 물줄기를 조그만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잡으려 한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을 어떻게든 움켜쥐려는 모습이 너무나 귀여웠다. 

 

샤워기에도 손을 뻗기에 약하게 틀어주니 졸졸 떨어지는 물에 손도 갖다 대보고, 좋아하는 주황색 물고기 인형도 들이밀어본다. 샤워기 머리를 쓱 잡아당겨보다 뒷면에 비친 자기 얼굴이 신기한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슬며시 입을 가져가 뽀뽀를 한다. 손바닥으로 물을 찰싹찰싹 때리다 제 얼굴에 물이 튀면 화들짝 놀라기도 하고, 욕실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이렇게 놀고도 '그만 하고 맘마 먹으러 가자'고 했더니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다. 저녁 맘마를 먹고 세 번째로 옷을 갈아입고 나자 퇴근한 남편의 차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아이 내일 먹을 이유식 재료를 사러 아파트 지하 마트에 가 있을 남편을 놀래켜주러 아이를 데리고 마트로 향했다. 정육 코너에서 우리를 발견한 남편의 눈에선 꿀이 뚝뚝 흘렀고, 아이는 기분이 좋았다. 

 

우유를 마저 먹고 잠 친구 인형을 손에 꼭 쥔 채 아빠와 코 자러 방에 들어갔다. 칭얼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우리 아가가 잠이 들었나 보다.

 

오늘 오후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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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필사진 hehebubu 작가님, 오랜만에 블로그 들려요 ^^ 브런치 입성도 축하드립니드아!! 섬세한 표현과 묘사도 여전히 멋지세요! 덕분에 "하늘을 나는 사자", "땋은 머리" 라는 책도 알게되었네요. 그림책의 매력을 조금씩 알것같아요. 2019.07.16 05:25 신고
  • 프로필사진 T9 아니, 작가님이라는 황송한 호칭이라니요!! ㅎ 정말 힘이 되는 댓글 감사드려요! :-) 저두 뒤늦게 그림책에 빠지고 있는 중이예요 2019.07.19 09:37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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