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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인생에는 '중요한 일'과 '꼭 그만큼 중요한 일'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순간들이 넘쳐 난다. 작정하고 독하게 우선순위를 가려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거나, 수많은 책임들 사이에 깔려 '나'라는 존재가 사라져 버릴 것 같다. 극도의 효율성과 날 선 정신이 필요하다.

 

당분간 연봉을 줄이는 대신 단축 근무를 하기로 결정했다. 안 그래도 많은 일을 이전보다 짧은 시간 안에 해내야 한다. 시간 단위로 정확하게 끊어지지 않고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프로젝트 성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업무시간을 줄이면서 딱 그만큼 업무량도 줄인다는 건 불가능하다. 까딱하다간 업무량은 그대로인 채로 업무시간과 연봉만 깎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출근과 동시에 시간은 단거리 육상선수 마냥 전력 질주하며 정신없이 흐른다. 퇴근 시간이 되면 신데렐라처럼 종종 거리며 집으로 돌아온다.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바로 엄마 모드로 뛰어든다. 아이와 놀다가 밥을 먹이고, 씻기고, 자고 싶지 않은 아이를 얼르고 달래 가며 침대에 눕히고 나면 이미 나는 탈진 상태다. 아기가 잠들기 전에 내가 먼저 기절할 판이다. 

 

일이 줄어들어 생겨난 틈을 재빠르게 육아가 채웠다. 시간을 들여 고민을 해보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벌어진 일이다. 글을 쓰고 잘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단축 근무를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벌써부터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종종거리나 싶다.

 

일도 힘들고 육아도 힘든데 그 사이에서 틈을 찾아 나를 위해 쓴다는 건 역시 불가능한 미션이었나 하고 포기하려다, 일의 우선순위를 가리는 역량과 효율성을 극도로 끌어올릴 수 있는 기회로 삼아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난관에 봉착했을 때 너무나 쉽게 '나'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를 다른 것에 내어주지 않기로 했다. 일도 중요하고 가족도 중요하다는 사실 앞에서 '나' 역시 중요하다는 건 항상 쉽게 잊고 만다. 이번엔 고집스럽게 내 시간을 한번 챙겨보기로 한다.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게 될 지라도 그전까지는 한번 해보려고. 

 

단축 근무를 하기로 한 것은 오랜 시간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다. 내가 그걸 선택한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아이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고, 일도 놓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 밖에서의 나를 찾아보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하루하루를 채워나가야 행복한지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 싶었다. 은퇴 후 내가 바라는 삶의 리듬을 먼저 체험해 보고 싶었다. 모든 건 은퇴 후로 미루고 무조건 참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기회가 될 때마다 한 층 한 층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삶을 쌓아가고 싶다.

 

아기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일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집안일은 포기한다. 간헐적 단식을 하면서 평일 저녁은 스킵하기로 했기 때문에 저녁을 차리고 먹고 치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일은 집으로 끌고 들어오지 않고 퇴근 전에 모두 마무리한다. 시간을 조금 더 들이면 완성도가 높아지겠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정도까지가 내 능력인 것이다. 그걸 인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끝낸다. 퇴근 후 한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지금 나의 흥미를 끄는 일들을 찾아본다.   

 

아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어설프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도 습관이다. 한 템포 늦춰가도 아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우선 나를 위한 시간을 찾자. 일단 내가 회복을 해야 삶의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내가 행복해야, 내가 만족해야, 내가 마음이 편해야 다음을 도모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회에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뭔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주 격하게 우선순위를 가려 보기로 했다.

 

 

 

#D-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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