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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가면 세 가지는 무조건 하는 거야. 모히또를 잔뜩 마시고, 시가를 피우고, 살사를 배우자!'

 

...라고 나를 꼬시던 친구가 느닷없이 엄마가 편찮으시다며 쿠바 여행을 펑크 냈다.

 

나는 그 무렵 중학교 이후로 스물일곱 번째쯤 찾아온 것 같은 '제2의 사춘기'를 지나고 있었기에 어디든 떠나야 했다. 친구 믿고 '따라가려던' 쿠바 여행은 그렇게 혼자 가게 되었다. 모히또, 시가, 살사만 중얼거리며.

 

출발한 지 32시간이 지나 하바나에 도착했다. 기진맥진해서 까사(숙소)에 짐을 풀고 오후 내내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밤에 말똥말똥 잠이 깨어 불을 켜놓고 책을 읽자니 에어컨은 킬 때마다 정전이 되어 하룻밤 새에 무려 7번이나 전기가 나가버렸다. 더워 죽을 것 같다.

 

하바나에서는 무작정 직진, 느닷없이 우회전, 가끔 좌회전을 반복하며 마냥 걸었다.

 

나는 이곳에서 곧잘 시선을 끈다. 길을 걸을 때마다 '치나, 치나'를 외친다. 중국 여자라는 뜻이다. 하바나에서 묵은 3일 동안 동양인은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치나, 니하오, 그리고 가끔씩 사요나라, 곤니치와.

 

젊은 남자들은 이빨 사이로 '프슷프슷' 바람을 뱉는 소리를 하며 나의 눈길을 끌려고 한다. 그럴 때면 피리 부는 조련사 앞에 놓인 뱀이 된 기분이 들었다.

 

쿠바의 첫 인상은 찌는 듯한 더위와 피곤, 잠시도 나를 가만 두지 않고 '치나'를 불러대는 남자들 때문에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이 곳에 머문 약 2주간의 기간 동안 나는 이 나라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벌써 10년도 더 전에 다녀온 여행이다. 반드시 다시 가겠다고 굳은 결심을 하고 떠나왔지만 늘 그렇듯, 그러지 못했다. 10년 전 기억을 더듬어 글을 쓰면서 그 때의 기억을 소환해보고 싶은 마음에 자판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D-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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