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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무리가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고유정 사건에 대한 얘기를 하다 자연스레 각자 자신이 만났거나 전해 들은 온갖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대화가 옮겨 갔다. 

 

그중 한 명이 '영화관 앞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결말을 큰소리로 떠드는 정신 나간 사람이 있었는데, 결국 한 대 얻어맞더라'라는 얘기를 하자, 듣고 있던 누군가가 '그런 인간은 맞아도 싸'라며 정말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리에 속해 있던 다른 사람들도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맞을 짓 했네'라며 수긍하고 넘어갔다.

 

'맞아도 싸다'는 말을 일상에서 직접 듣는 것은 오랜만이어서 귀가 낯설었다. 낯설어서 귀에 남은 그 말을 찬찬히 곱씹어 보니 이게 참 무서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아도 싸다, 맞을 짓 했다, 오죽했으면, 이라는 말.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큰 무게를 두지 않고 가볍게 툭 던지는 이 말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폭력이 가해졌는데, 때린 사람이 아니라 맞은 사람의 잘못으로 초점을 돌리는 말. 이유 불문하고 그 자체로 중지되어야 할 폭력에 그럴싸한 이유를 붙여주는 말. 어떤 폭력은 사실 괜찮을 수도 있다는 판단의 여지를 주는 말. 맞을 만한 원인을 제공하면 맞아도 괜찮은 거라고 생각하게 하는 말. '맞을 만하다'는 판단은 대체 누가 내릴 수 있기에, 그럴 권한도 없으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부끄럼 없이 입 밖으로 으 생각을 말할 수 있을까.

 

 

"나도 그런 상황이면 때릴 수 있어. 다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나만 이상한 거 아니잖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을 싫어하므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고유정 사건 같은 경우, 가해자에게 내 감정을 이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게까지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면 그 사람은 정말 정말 이상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 사람이 원래부터 이상한 사람이었다는 증거를 찾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런 증거들이 쌓일수록 가해자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정말 이상한 사람'이 되고, 나는 그 사람과 안전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흔한(?) 이상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평범한 사람들도 일상에서 '분노가 솟구치고 때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경험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그 상황에서 폭력을 휘둘렀을 때 가해자가 전적으로 나쁘다고 말해버리면 비슷한 충동을 느꼈던 나 자신의 경험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을 참을 수 없기에 우리는 피해자가 맞을 만한 짓을 한건 아닐까 라고 뒤집어 씌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은근슬쩍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반대로 피해자에게 공감을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맞은 사람은 맞을만한 짓을 했어야 한다. 만약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나쁜 일이 그 사람에게 생긴 것이라면 나 역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맞을 짓을 했기 때문에 맞는 세상인 한, 내가 맞을 짓만 하지 않고 산다면 나는 안전하게 살 수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폭력에 정당한 이유를 붙여주진 말자. 옷을 홀딱 벗고 다녀도 성추행은 하면 안 되는 것이고, 정말 딱 때리고 싶게 생긴 얼굴이어도 주먹을 날리면 안 되는 거다. 

 

고유정 사건을 말할 때, 그보다 앞서 한진 일가에 대해 말할 때, 그리고 최근 송송 커플의 이혼에 대해 말할 때 왠지 사람들이 너무나 신나 보여서 조금 씁쓸했다.

 

 

 

#D-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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